십 년 째 어설퍼도, 진짜 농촌 여성의 삶
[영화 리뷰]귀농 여성 농민 3명 다룬 다큐 <땅의 여자>
박종주 기자 메일보내기
“일하고 들어오면 피곤하지 않으세요?” 하고 물으니 “일어날 땐 피곤해도 일하고 나면 안 피곤해, 오히려 개운하지. 잘 때 되면 또 피곤해도.” 하는 답이 돌아온다. 그리고 거기에 “일하고 나면 개운한데, 집에 오면서 오늘은 또 뭘 해 먹나, 하는 생각이 들면 갑갑해.” 하는 말이 덧붙는다. 뒤에서는 아이들과 남편이 노는 소리가 들린다.
△ 권우정 감독, 다큐인 제작. <땅의 여자>
ⓒ 시네마달
권우정 감독의 <땅의 여자>는 세 명의 여성 농민에 관한 이야기다. 대학을 나오고서 농민 운동의 꿈을 갖고 귀농한 여성들, 십 년이 넘는 세월을 농촌에서 보내고도 여전히 “뭘 해도 어설픈” “들어온 사람”으로 살아가는 세 사람의 이야기다. 권우정 감독은 영화의 말미에 “농민이라는 다른 모습을 하고 있지만, 같은 여성이라는 점에서 나와 이어져 있다”고 말한다.
“농사짓는 게 쉬워, 촬영 편집하는 게 쉬워”하는 질문에 권우정 감독은 “영화 찍는 건 힘들지만 보람이 있어 좋고 농사짓는 건 아무 생각 없이 있을 수 있어 좋다”고 답하지만 어디까지나 손님으로서의 이야기다. <땅의 여자>에는 권우정 감독이 스무 달을 농촌에서 살며 여과 없이 찍은 온갖 고민들이 다 담겨 있다. 고부갈등이나 부부싸움은 말할 것도 없고 먹고 사는 문제에서부터 농민 운동에 대한 고민까지―그 속에서 생각 없이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은 아마 감독이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농사도 운동도 이대로는 안 되겠다며 전업 운동가로 나서든지 어쩌든지 해야겠다는 남편을 보며 소희주 씨는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더라. 농사를 통해 맺어지는 관계들 있잖아, 그게 너무 좋아 포기할 수가 없어.” 하고 말한다. 지역아동센터를 운영하며 민주노동당 지역위원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는 강선희 씨는 “있는 듯 없는 듯 농사만 짓고 싶었는데…”라며, 농사를 짓지 않는 농민 운동가로서의 생활을 전한다. 변은주 씨는 농사일을 하는 틈틈이 사회복지사 자격증 공부를 한다, “시험 칠 자격을 얻기 위해서 200만원(등록금)을 투자한 거잖아, 사실 될지 안 될지도 모르는데”라고 걱정을 하면서도.
영화를 다 보고 나니 ‘나는 이래 사는 내가 좋다’라는 카피에 조금 의문이 남는다. 다들 웃고는 있지만, 그저 좋다기엔 그 고민들의 무게가 만만치 않아서다. 다만, 건강하게 살고 있는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영화 홍보물에는 “우리 잘 먹고 잘 살고 있습니다”라는 문구 또한 적혀 있다. 권우정 감독은 “건강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널리 퍼지길 바란다”고 말한다.
기자가 영화를 본 시사회장에서는 관객 사은품으로 주인공들이 직접 보내주었다는 햇밤 한 봉지씩이 나왔다. 그간 곳곳에서 상영이 있을 때마다 주인공들이 종종 먹을 것을 보내 왔다고. 극장 개봉 후에도, ‘게릴라 극장 방문’을 통해 관객들에게 쌀을 나누어 줄 예정이다. 한편, 관객 1000명이 들 때마다 주인공들의 이름으로 불우이웃들에게 쌀을 기증하는 행사도 함께 진행된다.
완성되고서도 1년을 묵은 영화, 그 기간 동안 부산국제영화제 PIFF메세나상, 서울독립영화제 대상을 받고 두바이, 뉴욕 등에 초청 상영된 영화, 늦어지는 개봉에도 정작 주인공들은 “묵은 놈이 이야기가 많다”며 여유만만이었다는 영화 <땅의 여자>는 9일 전국 각지에서 개봉한다. 구체적인 개봉관 및 상영 일정은 배급사 시네마 달(홈페이지 http://cinemadal.com, 홍보팀 02-337-2135)로 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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