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칼럼]도시농업인가, 도시 정원인가? | |||
①그린벨트, 정원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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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말에 ‘자연만큼 훌륭한 스승은 없다’는 말이 있다.
이말은 인간은 자연에서 나왔으며 자연에서 생활물을 얻고 먹고 살아가기 때문에 이 말보다 더 자연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한 말은 없다고 본다. 인간은 자연속에서 자라고 있으며 자연에서 생필재료를 얻는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의 이치는 인간의 선험적 이성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주로 후천적으로 습득되는 것이다. 인간은 자연에 적응하기 위해 자연과 싸우기도 하고 자연에서 배우기도 한다. 그 결과 인간은 자연을 정복하여 자연을 지배하기에 이르렀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이 지배한 자연의 석유문명중독 등 문명과잉으로 인하여 자연의 종말이 앞당겨지기도 한다.
이러한 자연의 종말을 우리는 환경재앙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석유문명 때문에 발생한 ‘석유전쟁’이나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가 대표적인 환경재앙중의 하나이다. 그런데 최근 모 언론에서 ‘순천정원박람회’를 선전보도하기 위해 정원화라는 이름아래 도시공원조경과 정원화에 눈을 돌리고 투자해야 한다고 민중을 향해 우매한 훈수를 일갈하고 있다. 잘 꾸며진 정원이 싫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소위 환경재앙을 불러온 이유를 과도한 문명중독에서 찾으려 들지 않고 돈으로 가꾼 정원의 화려함속에서 찾으려 함으로써 환경재앙의 원인과 해결책을 제대로 짚지 못하는 무식의 소치를 드러내 보이는 것이다.
무릇 생태체험이란 문명의 발전으로 사라져가는 자연물을 지키고 삶의 일부로 받아들여서 인간과 자연의 공존이라는 타협점을 찾는 인간감수성 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 안되는 자연대신 돈되는 정원개발로 생태체험을 하겠다는 발상이 어떻게 생태라는 철학적의미를 부여받고 추앙받고 남발될 수 있겠는가? 제대로 된 생태란 정원으로 꾸며진 생물을 감상하도록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법칙을 이해하고 그 법칙에 거스르지 않고 인간적 이성으로 타협을 시도하는 것이다. 그래서 자연주의적 생태란 생물자연을 감상하는 것에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며, 자연의 법칙대로 작물을 길러 살아가면서 자연을 덜 훼손시키는 것이다. 인류역사에서 도시와 상업의 발달로 도시녹지가 줄어들고 야생의 자연 태고적 자연 천혜의 자연으로부터 물려받은 생물종다양성(生物種多樣性)이 침해되어 멸종동식물이 생기지 않도록 인간의 손길을 스스로 단속하는 것이 환경재앙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가장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길이다.
그럼에도 멀쩡한 논밭을 공원용지로 뒤바꾸고 정원을 꾸민다는 정책적 발상은 초현실주의적이고 반자연주의적인 발상이다. 자연을 파괴하는 현실도피이자 자연독식으로 망해가는 개발주의의 최후의 망동인 것이다. 왜냐하면 이는 인간만을 위해서 자연을 독점적으로 이용하겠다는 종이기주의(種利己主義)의 발로에 다름아니기 때문이다. 논밭갈기보다 더 현실 참여적인 환경정원 정책은 없다. 논은 자연 그대로가 습지이고 밭은 자연 그대로가 자연의 경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연농사보다 위대한 정원은 없다. 녹지보전 자연보존이야말로 가장 현실타협적인 자연주의이다!
우리의 권력자, 개발주의자들도 이점을 빨리 깨닫기를 기대한다. |